본문 바로가기
공포번역/단편

[레딧공포번역글]소멸의 소리.

by 김B죽 2020. 7. 23.
728x90

 

차가운 금속을 관자놀이에 꾹 누르는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난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단지 마지막 몇분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는 죽기를 바라고 있고, 내 손에 들린 총의 총알 한발이면 충분할테지.

그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안 그러는게 좋을텐데요."

 

난 의자에서 벌떡일어나 총을 들고 방을 둘러봤지만 당연하게도

모텔방엔 오래된 티비와 축축한 침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밖에서 들린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내게 말을 거는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행인의 목소리라고.

그렇게 충격이 좀 가시고 나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지 말라니까요 개리."

 

아까와 똑같은 목소리가 내게 말했지만

여전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 누구야?"

 

난 말을 더듬으며 다시 일어나 목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알아내려고 방을 빙빙돌면서 샅샅히 살펴보았지만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하고 다시 앉아 내 삶을 끝내려는 순간,

누군가 구석에 서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는 아픈사람처럼 창백하고 마른 나이든 남자였는데

몸에 잘 맞춰진 정장을 입고는 제가 총구를 그에게 들이댈때도

눈하나 깜짝하지않고 오히려 히죽거리기까지 했습니다.

 

"망할 방에서 당장 나가."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지만 그는 그저 기묘한 표정을 짓고는

제게 확인하는듯한 말투로 물었습니다.

 

"제가 두려우신가요?"

 

남자의 질문은 나를 당혹시켰습니다. 난데없이 이상한 남자가

갑자기 내 방에 나타나서는 뻔뻔하게도 내게 두렵냐고 묻다니.

하지만 그는 개의치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왜일까요?"

 

"난 지금 가진게 아무것도 없소.

 다만 당장 방에서 꺼지지 않으면 바람구멍을 내드리지."

 

"뭘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제가 오기 전에 뭘 하는 중이셨죠?"

 

"당신이 알 바 아니오."

 

"당신께선 당신이 바라마지않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계셨는데,

 대체 저의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한건가요?"

 

남자의 말은 맞았다. 나는 자살을 하려고 했으면서도 두려워 했던것이다.

죽음 그 자체가 아닌 남자가 가진 무언가가 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우울하신가요? 그것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려 하시는 건가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너무나 죽길 원하시는군요."

 

그가 나타날 때 느꼈던 공포는 병적인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그의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태도가 그의 질문을 거절할 수 없게했다.

 

"난 그저..나는.."

 

"아무데도 속해있지 못한 기분을 느끼시나요?"

 

그의 단순한 몇마디는 갑자기 내게 깨달음을 주었는데,

나는 죽음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지만 정확히 무엇때문에

그런지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그 문장을 소리내어 말 한 순간 나는 내가 이 모든 것,

내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단 한번도, 그 어떤것에도 속해있는 기분을 느낀 적이없다.

좋은 친구들, 괜찮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항상 죄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껴왔다.

그냥 모든게 너무 당연시되어서 정확하게 콕 집어낼 수 없었던 것 뿐.

 

바로 그거였다. 그런거였어.

 

"대체 어떻게..어떻게 안겁니까?"

 

"왜냐면 당연한 사실이니까요. 개리 위드모어씨. 당신은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무슨소릴 하는거요..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원하신다면 보여드리도록 하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았지만 이 남자는, 그가 누구건 간에

이미 내 마음을 완전히 읽고있었다. 난 총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작은 손짓 한번에 모든 것이 암흑에 빠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텅 빈 공간에 서있었습니다.

저만치에서 끝없는 어둠속을 걷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몇초인지 아니면 몇천년인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갔죠.

 

"어디로 가고 있는겁니까?"

 

나는 남자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내 외침이 그에게 닿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있었으니까요.

 

그러고는 내 마음이 공허해지는것을 느끼면서 내 시야에 다른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색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시설들이 즐비한 작은 마을같은것이었는데,

수척해보이는 어떤 여자가 죽은 남자의 시체 옆에 앉아있었고

남자의 시체는 목이 잘린 채 피웅덩이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잃은 슬픔에 울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시체를 보고있지 않았어요.

그녀가 보고있는 것은 마랄비틀어진 식물과 채소들이 가득 찬 온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처럼 그녀의 울음소리만이 울려퍼졌습니다.

마치 그녀 주변의 모든 것들, 동물들이나 교통 소음같은 사소한 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았죠.

 

태양조차 회색빛 구름 뒤에 숨어버린 황량한 풍경속

콘크리트 정글은 공기마저도 부자연스럽게 건조했습니다.

 

"이봐요?"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말을 걸려고 해봤지만 내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대신 창백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닿는것을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용도 없었어요.

그녀는 내가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단단한 물체 같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건가요?"

 

"108번 벙커입니다. 지구 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 배아 재생 시설이죠."

 

모든것은 기본적으로 뭔가 디스토피아적인 현대적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나는 정확히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래에 있는건가요?"

 

내가 묻자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인류의 마지막 모습이죠."

 

그가 나에게 다시 손짓하자 우리는 어떤 구조물의 맨 꼭대기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주변은 황량하게 마른 풍경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남아있을 뿐인 이 우울한 대지가 바다였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생명도 남기지 않고 메말라버린 바다의 흔적일 뿐이었어요.

 

"이것이 당신의, 인간들의 미래입니다."

 

단순히 인간의 종말뿐만 아니라 행성적인 측면에서 모든 생명이 맞이한

이 끔찍한 미래는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찼고

나는 남자에게 간신히 떠올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게 몇년도인가요?"

 

그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습니다.

 

"그건 대답하기 어렵군요. 세세한 디테일들은 매번 바뀌지만 결과는 항상 같아요.

 인류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이 끝나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 결국 굴복해

 이 행성은 죽게 되니까요. 당신들은 결국 이 행성을 떠나지 못하고 이 시설에서

 마지막 생명을 이어나가려고 애쓰지만 결국엔 우주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잊혀지게 됩니다."

 

나는 그저 우리 주변의 황량한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바람소리가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불길하게 울렸고 먼 곳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죠.

그녀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이고 금새 죽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인류는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 순간 공포가 내 몸을 감쌌고

우리들이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전혀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게 저를 슬프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화가 날 뿐이었죠.

 

"왜 저한테 이런걸 보여주는겁니까?"

 

긴 시간의 침묵을 깨고 내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왜냐면 당신네들의 소멸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창백한 남자가 손짓을 하자 내 발 아래 놓인 풍경이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허무의 시간속을 헤메다 갑자기 뉴욕거리에 서있었습니다.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마치 오랫만에 만난 친구를 반기는듯한 사람들의 말소리는

우리가 방금 지나온 미래의 공허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순수한 행복 그 자체였어요.

 

거리를 걷는 수천의 사람들은 모두가 삶의 목적과 생명력으로 가득차있었는데

그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한듯 보였지만 그들은 몸 주변이 이상한 아우라로 감싸여 있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그 아우라를 볼 수 있었지만 그 에너지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죠.

 

그들의 일상적 태도조차 감탄스럽게 보고 있던 와중에 짙고 검은색 형체들이

군중사이를 걸어다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처럼 보이는 그 형체는

한 번 눈에띄자 점점 많은 수가 눈에 띄었고 수천은 되어보였습니다.

 

"저것들은 대체 뭡니까?"

 

"그 형체들은 이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시간대의 반복구간을 위해 선택된 이들이구요."

 

그들은 다른 현실, 다른 시간대에 속한 잠재적 인간들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그들을 볼 수 있는걸까?

 

"우리의 일은 알맞는 이들을 골라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수백만번이 넘는 반복을 통해 당신에게 보여드린 미래를 막으려해봤죠."

 

"뭐때문에요?"

 

"왜냐면 인류의 운명은 본디 당신에게 보여드린 것보다 더 위대했기때문이에요.

 어떤 존재가 단지 역사를 완전히 파괴할 목적으로 이 지구에 보내졌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의 말은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기도 했거니와 왜 제가 선택된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 모든 지구상의 위대한 인간들을 제쳐두고 하필 어디도 속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을?

 

"왜 접니까?"

 

내가 고민끝에 남자에게 묻자 그는 그저 나를 쳐다보고는 

내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했습니다.

 

"혹시 부모님을 기억하십니까?"

 

"전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사람들말로는 갓난아기일때 거의 죽기직전 상태로

 거리에 버려져있었다고 했구요."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군요?"

 

"그,그렇게 되는군요."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남자는 내가 봤던 아우라가 무엇인지 설명을 해 주었는데

그 아우라는 사람들이 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도록 붙잡아두는 에너지이며

만약 그 에너지가 없다면 모두는 내가 봤던 형체처럼 변하게 된다고요.

실재하는 진짜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린 아주 깔끔하게 잘 닦인 광나는 유리창을 가진 가게 옆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유리창에 비친 사람들 사이에 이상하게 서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며 저는 제 어린시절에 대해 떠올려보려 했고

우리가 반짝반짝 광나는 유리창의 백화점 옆을 지나칠때 남자는 내게 멈춰서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제 모습은 나머지 사람들과 아주 많이 달라 보였죠.

 

저의 몸에는 그 어떤 아우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 이상한 여행에 저를 초대한 이 남자조차도 아우라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왜 저에게는 아우라가 없는건가요?"

 

"왜냐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은 존재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반복때까지 우리는 당신의 존재자체도 몰랐습니까요.

 개리 위드모어씨 당신의 존재는 수정되어야만 할 변칙 그 자체에요."

 

그의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아주 불길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존재조차 해서는 안되는 존재라면, 대체 어떻게 그걸 수정할 수 있단말이지?

 

"정확히 무슨 얘길하는거요?"

 

"그말은 당신이 시간 그 자체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라져요? 그럼 왜 내가 그냥 자살하게 냅두지 않은겁니까?"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이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들,

 좋은 영향 혹은 나쁜것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전부 이 세계에 기여했으니까요.

 우리는 당신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실히 해야만 합니다."

 

남자가 한 이야기는 데이비드 이글맨의 격언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죽음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당신의 육체가 죽었을때.

 두번째는 당신의 육체가 무덤에 묻힐때.

 세번째는 언젠가 마지막으로 당신의 이름이 불릴때.'

 

앞의 두가지 죽음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모두에게서 완전히 잊혀진다는

그 개념은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

 

"제가 했던 모든것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는 건가요?"

 

"당신이 받아들이기로 한다면요."

 

"그게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군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체 어떤식으로 이뤄지는겁니까? 그냥 저를 완전히 사라지게하거나

 분자단위까지 저를 쪼개고 뭐 그런건가요?

 그냥 도무지 어떻게 되는건지 이해가 잘 안가서요."

 

"당신은 요원이 될겁니다. 우리들처럼요. 당신이 지금까지했던 모든일들은

 사라지고 잊혀지게 될 테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순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점을 이용해 역사의 파괴를

 막는걸 돕길 바랍니다."

 

"제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전부 사라지나요?"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 멈춰섰습니다.

 

"이야기, 유물, 혹은 편지 뭐든 한가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아무도 그게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에요. 당신의 이름은 이야기로 바뀌겠지만

 적어도 완전히 잊혀지진 않을 겁니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보단 나았습니다.

 

"준비가 되셨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