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최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이 있곤해.
내게 있어 그것은 우리 현관문의 깨진 나무판에 휘갈겨 쓰여진
'S'라는 글자였는데, 그 당시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왜 있는지 알지 못했지.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고
그 느낌은 집에 들어섰을 때 뭔가 불길한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라디오 앞에 서로를 끌어안고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부모님을 보는순간, 확신으로 바뀌었어.
"어딜 다녀온거니?"
어머니는 날 본 순간 숨을 몰아쉬며 말하셨어.
"나가서 놀다ㄱ.."
대답하려는 순간 어머니가 나의 뺨을 내리치셨고,
"내가 오늘은 밖에 나가면 안된다고 했잖니!"
난 잠시 충격에 빠져 어머니를 쳐다봤어. 내가 어머니의 말씀을 어긴 것이
처음은 절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그런 나를 때린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단 한번도 나를 때린적은 없는 분이셨으니까.
"그만하시오."
아버지가 한마디하시자 어머니는 화가 난 얼굴로 아버지를 쏘아보시고는
내 어깨를 움켜쥐고 흔들며 말씀하셨어.
"다시는 그러면 안된다.
상황이 좋지않단다. 알겠니?
엄마 말 잘 들으렴. 지금 밖은 안전하지가 않아.."
"애한테 너무 겁주지마시오. 내버려 두라고 했잖소."
아버지가 어머니의 말씀을 중간에 끊어버리자 어머니는 뭔가 쏘아붙이시려다가,
"네 방으로 올라가렴."
하고는 손가락을 한번 튕기고는 윗층을 가르키며 말하셨어.
"그리고 엄마가 저녁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진 내려올 생각하지마."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맞은 것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두분이 말씀하시는것을 엿들을 수 있었는데
당시 두분이서 무엇때문에 그렇게 불안해하시고 있는건지,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
"말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아니. 그럴필요 없소."
"하지만 이미 시작됐잖아요. 그들이 이미 표식을 남겼어요.."
내가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위로 몸을 던질 때 까지도 부모님의 대화소리는
희미하게 나를 따라왔고, 그 날은 1984년 10월 31일 오후 7시였어.
당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가 시크 성지 황금사원의 시크 분리주의자들을
몰아내도록 육군에게 지시한지 4개월째 되는 날이었고, 이는 수백만의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지.
그리고 그런 인디라 간디 총리가 시크교도 보디가드들에 의해서 암살된지
10시간이 지난 시점이기도 했어.
그저 어린 시크교도 소년이었던 나는 이게 얼마나 큰 일인지, 또 바로 다음날
내 인생에 얼마나 끔찍한 일을 일으킬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그날 저녁은 굉장히 조용했고, 나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단걸 알 수 있었지.
아버지는 모든 창문과 문을 걸어잠그고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물건과
가구를 쌓아 막아버리셨어. 식탁위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뉴스따위를 내보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짜증을 내며 라디오를
꺼버리셨지. 우리는 침묵속에서 저녁식사를 했어.
나는 일찍 침대로 향했고 어머니께서는 그날 유난히 다정하셨어.
눈물을 흘리며 내 갈비뼈를 마치 독수리처럼 꽉 안으셨는데 마치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고 계신 것 처럼 보였지.
우리는 다음날 우리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나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아버지가 현관문 구멍으로 밖을 들여다보고 계신 걸
훔쳐봤고, 밖에 있는건 아버지의 친구신 샤르마씨였어.
"당장 떠나야돼!"
샤르마씨는 벗겨진 머리에서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소리쳤어.
"당장! 그들이 오고있소! 바로 이 앞까지 왔단말이야! 수천명은 돼!"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는 어머니를 불렀어.
어머니께서는 이미 작은 가방을 하나 챙긴 채 뛰쳐 나오셨지.
그녀는 내 손을 낚아 채고는 아랫층으로 뛰어내려왔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샤르마씨가 우리와 함께 집을 나서며 말했어.
"시크교도들이 사는곳을 이미 다 알고있어. 듣기로는 시크교도 소유의 집을
알아내기 위해서 투표용지를 넘겨받았다고 하더군.
시크교도들이 사는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오."
광기에 찬 소리가 쓰레기더미가 깔린 거리 아래에서 들려왔고,
멀리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어.
우리는 칼과 막대기를 든 두명의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광분에 찬 소릴
지르는 걸 발견했는데, 그들의 악의에 찬 미소는 내 등골을 오싹하게 했지.
"이리로, 빨리! 저들이 우릴 보기전에 어서!"
샤르마씨의 외침에 우리는 공포에 질린 채 물러났고,
샤르마씨까지 모두 숨은 후에 아버지는 문을 닫아버리셨어.
"이제 어떻게 하지?"
아버지가 숨을 죽이고 묻자 샤르마씨가 가는 머리칼을 넘기며 말했어.
"여기 남아 있다가는 갇히고 말거야. 옥상으로 가세.
그리고 거기서 내 트럭까지만 가면 돼."
우리가 옥상으로 향하는동안 외침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커지고 있었어.
무자비한 폭도들은 이미 거리에 들어서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S'가 적힌 모든집에 들이닥쳐 불을 지르고 그곳에 사는 모두를 죽일 기세였지.
"엎드려라."
아버지가 조용히 속삭이시자 어머니께서는 나를 눌러서 몸을 낮추게 하셨어.
나는 기어가는동안 계속 흐르려고 하는 눈물을 참으며 내 코를 찌르는 악취와
싸웠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건 사람의 살이 타오르는 냄새였지.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가 외침소리보다도 커져서 온 동네를 메우기 시작했어.
몇몇 가족들은 운 나쁘게도 폭도들에게 붙잡혔던거야.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쓸려서 내 무릎과 손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기어가는 내내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그저 엉엉 울고싶었어.
하지만 우리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계속해서 고통과 싸우며
기어가는 수 밖에 없었지. 샤르마씨가 첫번째로 난간을 넘어 우리 이웃집
지붕으로 뛰어 넘어갔고, 그 다음으로는 내 아버지가, 그리고 내 차례였어.
난 아래를 내려다봤고 겨우 두 층계밖에 안됐지만 그 날 당시 나에게는 훨씬
높게 느껴졌었어.. 그 순간 아버지께서 날 불렀지.
"이쪽을 봐라!"
아버지는 나를 향해 팔을 쭉 내밀고는,
"내쪽을 봐라. 그래 그렇게."
나는 깊게 숨을 몰아쉬고 뛸 준비를 했고, 어머니는 아버질 향해서 나를 밀어주셨어.
그리고 어머니의 차례가 되었을때, 우리 바로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어.
폭도들이 우리집에 들이닥친거야. 우린 정말 간발의 차이로 그들을 피할 수 있었지.
완전히 두려움이 가신것은 아니었지만 지붕사이를 넘는것은 점차 쉬워졌어.
그날 나는 그곳에서 겨우 10살 남짓한 소년이었지만 살기위해 뛰어야했어.
증오와 복수는 내 어린시절을 완전히 부숴버렸지만, 그 모든 폭력보다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은 바로 무력감과 두려움에 빠진 아버지의 얼굴이었어.
"도착했어."
샤르마씨가 조용히 속삭이며 우리가 도착한 집의 층계참을 내려갔고,
아버지가 그 뒤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나는 뒤를 흘끗 살펴보기로했어.
저 아래, 우리 뒤편으로 한 십여채쯤 되는 거리에 시크교도 한명이
길 한가운데서 죽임을 당하고 있었어..나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지.
그는 거리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발가벗겨진채로
찢겨진 터번이 머리에서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머리칼은 땀에 젖어
어깨에 엉겨붙어 있었어.
폭도들은 기름을 바른 타이어를 그의 목에 끼우고는 불을 붙였어.
타이어는 불에 타 수축되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마치 녹아내리는
보아뱀처럼 옥죄었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어.
대체 어떤 종류의 증오가 인간을 저렇게 잔인하게 만드는걸까?
아직까지도 나는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어..
우리가 모두 내려오자 샤르마씨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셨어.
샤르마씨를 따라 굳게 잠긴 집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지나는 동안
폭도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왔어.
우리 동네가 마치 유령마을 처럼 느껴졌지, 피에 굶주린 악마들이
가득 찬 유령마을 말이야.
골목을 지나는 동안 검은 오물들 사이로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시체들이 하수구를 발견했고 난 아직도 끔찍하게 살해당한채
아무렇게나 내버려졌던 그 시체들에 대한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어..
"저기있어!"
샤르마씨가 방수포로 뒤편을 감싼채 길 한켠에 주차해둔 오렌지 트럭을
가르키며 외쳤어.
"빨리타!"
아버지가 먼저 올라타 과일들을 치워서 우리가 탈 공간을 마련하셨어.
우리는 운전석 뒤의 과일들과 채소박스 그림자 사이로 몸을 깊숙히 밀어넣었지.
샤르마씨가 운전석에 미끄러지듯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트럭은 시끄러운 소릴 내며 큰 도로를 따라 그 모든것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어.
우리의 집. 우리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여신처럼 떠받들던 지도자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복수에 혈안이 된 폭도들에게서.
그 트럭은 내가 앉은 곳 옆에 작게 틈이 벌어져 있었는데,
내 옆에 앉아 두려움과 충격에 몸을 떨고계신 어머니가 있었음에도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바깥을 보려고 애썼어.
그날 그 틈을 이용해 본 대학살의 흔적들은 지금도 나를 괴롭혀.
거리에 가득찬 피.
흩뿌려진 검게 탄 시체들처럼 불타버린 집과 상점들.
샤르마씨는 몇번이나 시크교도를 잡아내기 위해서 길을 막은 폭도들을
맞닥뜨려야 했는데, 그들은 샤르마씨가 시크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차 뒷편을 확인해야만 보내주었어.
난 가능한 조용히 앉아 내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트럭 뒷편을
확인하는 발소리를 들으려 애썼지.
폭도들은 세번이나 우릴 멈췄고 샤르마씨는 그저 상품들을 지키고 싶다는
변명을 했어. 우린 세번이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뻔 했던거야.
나는 부모님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떠올리며 훌쩍였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어.
우리는 숨을 죽이고 동네의 경계를 벗어나 큰길에 접어들고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겨우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단 걸 전혀 몰랐지.
바로 좁고 숨막히는 올드델리에서 넓고 호화로운 뉴델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경찰 검문소였어.
검문소의 몇피트나 되는 쇠 철창이 길게 늘어서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고,
경찰차 한대가 서있었어.
두명의 경찰이 샤르마씨를 멈춰세우고는 뇌물을 요구했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어.
뇌물을 건넸지만 경찰들은 여전히 트럭뒷편을 확인하길
요구했고 샤르마씨는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지.
난 당시 경찰들이 항상 정의의 편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자란
어린아이에 불과했기때문에 경찰들이 폭도들을 방조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인에 가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어.
그리고 우리는 운나쁘게도 그 두사람을 만났던거야.
경찰 중 한명이 트럭위로 올라와 2미터길이의 대나무막대 라티를 이용해
상자들을 마구잡이로 두드려 뒤지면서 동료와 잡담을 나누는동안,
그의 발소리는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졌어.
계속해서 가까워지던 발소리는 내가 그의 반짝이는 구두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멈추었고, 그는 겨우 몇 인치 앞에 서있었지.
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으려 노력했고,
그는 몇초정도 제자리에 서있다가 돌아가려는 듯 보였어.
그러나 그 순간 그가 재빠르게 몸을 숙여 내 얼굴을 쳐다봤어.
그가 씩 웃자 콧수염이 말려올라갔지.
어머니의 비명소리속에서 나는 두려움에 빠져 몸을 숙이려 했지만
그가 내 머리채를 붙들고 트럭 밖으로 끄집어내려했어.
난 울면서 어머닐 부르고 손에 가시가 박히는것도 모른채 아무 상자나
붙들고 끌려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어.
내가 트럭밖으로 거의다 끌려나갔을때, 아버지가 소릴 지르며
그 경찰에게 달려들었어.
아버지는 칼을 꺼내 경찰의 등을 몇번이고 찔렀어.
전통을 따르는 시크교도들이 의식을 위해 챙겨다니는
키르판이라고 하는 칼인데, 그 칼로 날 구한거야.
경찰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아버지는 그를 트럭밖으로 밀어버렸어.
그러자 남은 다른경찰이 아버지에게 총구를 향했어.
난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어.
단 한방. 방아쇠를 당기면 작은 연기와 함께 아버지의 목숨은
영원히 사라지겠지.
하지만 그 경찰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어.
왜냐면 샤르마씨가 타이어레버를 그의 뒤통수에 휘둘렀거든.
경찰이 쓰러지자 샤르마씨는 그의 머리통이 갈라져 뇌수가 아스팔트에
흐르고 갈색 경찰 제복이 피로 물들때까지 계속해서 내리쳤어.
"괜찮나?"
샤르마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다가와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버지의 손을 내미셨어.
몇 분동안의 충격이 몰려온건지 떨리는 아버지의 손은 나를 감싸안고
가슴을 치며 우셨어.
그 시점부턴 비교적 안전한 편이었지.
우리는 트럭 뒷편에 불편하게 몸을 웅크리고 시크교도들이 많이 살고있는
펀자브로 향했어.
그날 수천명의 시크교도들이 살해당했고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렸어.
만약 아버지의 가장 친한친구의 용기와 약간의 행운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후자가 아닌 전자의 통계에 속했을거야.
1984년 11월 1일부터 4일간 자행된 시크교도 대학살에 관련된 글이에요.
너무 무겁고 괴로운 주제라 글을 옮길때 생생한 표현이 괴롭게 다가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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