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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번역/시리즈

[레딧공포번역글]난 상류층을 위한 개인박물관에서 일했었어. (2편)

by 김B죽 2021.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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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 [공포번역/시리즈] - [레딧공포번역글]난 상류층을 위한 개인박물관에서 일했었어. (1편)

 

[레딧공포번역글]난 상류층을 위한 개인박물관에서 일했었어. (1편)

그 박물관은 공개적인 어떤 알림도 없이 문을 열고는 했어. 주에 단 한 번, 6시 정각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이야. 느려 터진 전용기 같은 말도 안 되는 변명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아, 오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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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박물관에서는 맹독성의 유리 나비들이 케이지에서 탈출하는 사고가 일어났어.


이번주의 나는 홀로 해양 전시관에 있었어.

 

어두운 탱크 안의 심연 속을 뱅글뱅글 돌며 절대 존재할 리 없는 출구를 찾는 앵글러피쉬는 자기가 갖혀있는 수압탱크의 유리창 밖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발광하는 미끼를 유리창에 부딪혀대며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고있었어. 안녕, 작은 친구.

 

난 심해 전시관에 한동안 서서 작은 상자가 자기 세상의 전부인 생물이 그 안에서 헤엄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고있었지. 그 생물은 자기가 왜 이 박물관에 있는건지, 아니 누가 자기를 여기 데려온 건지도 전혀 모른 채 그저 헤엄치고 있었어. 계속해서 헤엄치고 헤엄치며 이 유리창에 아주 작은 금이라도 생기기를 바랄 뿐.

 

다행히 털이 덥수룩한 프로그피쉬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금새 끝이 났고 늙은 리트리버의 다리같은 노란 지느러미를 질질 끌고 탱크바닥에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어. 이 소름끼치는 박물관에서 행복하기는 꽤 어려운 일이지만 그 방은 항상 날 웃게 만들지.

 

난 윗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몇시간동안 서류작업을 했어. 그리고 정확히 어느 시점에 잠이 든건지는 모르겠지만 책상에 엎드린 채 깜빡 잠이 들어버렸고 금새 악몽속에서 그 댓가를 치루었어.

 

"아빠, 저 예뻐요?"

 

낮고 굵은 목소리.

 

금발이 휘날리는 그녀의 얼굴 주변에는 까만 날파리가 마구 날아다니고 있었어. 눈과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게 퍼덕이는 날개만이 잔뜩 보였지.

 

"저 예뻐요?"

 

소피아의 목소리와 전혀 다른 목소리. 내 죽은 딸의 얼굴을 하고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날파리들이 목구멍에서 윙윙거리며 들끓느라 말하기가 힘든거겠지.

 

"아빠? 또 잠드신거에요?"

 

그녀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소리로 킥킥댔어.

 

날파리들은 그녀의 얼굴 주변을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어. 윙윙거리면서말이야.

 

내 팔 위에 앉은 한마리를 찰싹 때려 잡을때까지도 계속해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몸을 뒤틀며 신음을 내뱉으며 잠에서 깨어났어. 내가 깨어날때 스스로 때린 손목은 붉게 변했지. 거대한 박물관의 로비에는 여전히 찰싹하는 소리의 메아리가 울려퍼졌어.

 

나를 깜빡 잠들게 했던 책상 여기저기 널린 종이서류들을 보자 스트레스가 밀려오더군. 지난주의 사상자들과 오늘밤의 손님들 그리고 개선점들 따위의 지루한 양식들. 내 팔에 붙어있던 종이가 한 층 위의 리셉션데스크에서 아래의 로비로 떨어졌고 나는 해양 전시관과 잠깐의 쪽잠이 가져다 준 무의식적인 현실도피만이 이 박물관에서의 유일한 내 자유야. 그마저도 악몽이 망쳐버렸지만 말이지.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려고 했을때 나는 내가 내려친 것이 파리가 아니었단 걸 알았어. 유리나비는 그저 반짝이는 날갯조각만이 남아 내 손가락을 덮고 있었지. 나는 손을 문질러 그 투명한 조각들을 떨궈냈고 조각들은 마치 모기나 먼지처럼 미풍에 대리석 계단으로 산들거리며 떨어졌어. 유리천장을 통해 쏟아지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말이야. 아주 잠깐동안 나는 유리나비가 차라리 나를 쏘아버렸으면 하고 바랐어. 그랬다면 난 더이상 죽은 딸의 입에서 파리가 들끓는 꿈따위를 꿀 필요는 없을테니말이야.

 

론과 질을 포함한 관리직원들이 일을 끝내고 모두 떠나자 부산한 소음은 완전히 사라졌어. 이곳에 남은 일은 오로지 다른 부유하고 개탄스러운 인간들을 기다리는 것 뿐 이었지. 난 또 다시 이 박물관의 유일한 직원으로 여기 남아있게 되었고 난 내가 투어가이드가 되기 전의 일을 생각하며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었어.

 

문을 열 시간이 거의 다 되자 난 머리를 빗어 넘기고 코트깃 밖으로 셔츠의 카라를 빼내어 매무새를 다듬은 뒤 신발에 광을 내고는 나비의 날개가루가 마치 안개속의 불빛처럼 반짝이고있는 계단을 걸어내려갔어.

 

시계가 정각 6시를 가리켰어. 박물관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자들만을 위한 전시를 여는 저녁이 또 찾아 온거야. 나는 커다란 문을 당겼고 문에서 나는 큰 소리가 거대한 로비를 메웠어.

 

일곱명의 상류층 인간들이 거만하게 안으로 들어왔어. 비싸보이는 드레스와 코트를 걸친 세명의 남자와 네명의 여자들이었지. 한 남자는 그의 나무지팡이를 챙겨서 들어오기 위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어.

 

"투어는 곧 시작 될 겁니다. 코트 걸이는.."

 

난 말끝을 흐렸어.

 

소녀....한 여덟 아홉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작은 검은 정장을 입고 조용히 문으로 들어섰거든. 불안한 눈빛으로 로비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소녀의 커다란 눈은 반짝이고 있었어.

 

이 소녀는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데..그녀는 명단에 없었단말이야. 아마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리가없잖아.

 

난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

 

"안녕하신가요 아가씨."

 

소녀는 수줍어하며 거대한 문의 문틀 뒤로 몸을 기댔어. 그녀의 피부가 마치 대리석처럼 상아빛으로 창백하게 변했지. 이 소녀는 이 버려진곳에 온 첫번째 소녀고 거기엔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테지.

 

"어느 분이 아가씨의 부모님일까요?"

 

난 따뜻한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며 물었어.

 

소녀는 그저 금발 머리카락 아래의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빤히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 아이는 말을 안 하더군 젊은이."

 

나무 지팡이를 든 남자가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어.

 

"여기 오는 내내 아무런 말도 안했다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군 그래."

 

"어떤것에도 반응을 하지 않던데."

 

매부리코를 한 속물같은 여자가 코트를 걸이에 걸며 말했어.

 

"귀머거리가 틀림없어."

 

가만히 서서 잠깐동안 생각에 빠져 심사숙고를 하는 내 얼굴은 불빛에 비춰진 채 변했지. 현관에 서있는 억만장자들을 돌아보니 그들은 이미 투어를 시작할 준비를 완전히 마친 상태였어. 그 무리들과 소녀를 함께 데려가는 것은 말할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박물관에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최소 20여가지의 언어를 구사하도록 요구되었고 그중에는 수화도 포함되어 있어. 비록 내가 아주 간단하고 중요한 몇가지 단어 외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야. 난 다시 무릎을 꿇고 이번엔 손을 이용해 소녀에게 대화를 시도했어.

 

소녀는 그녀의 부모님이 사업차 두바이로 떠나면서 이 박물관으로 그녀를 보냈다고했어.

 

"비행은 어땠나요?" 

 

내가 수화로 말을 걸었지.

 

"좋았어요. 코가 큰 아줌마가 좀 귀찮게 했지만."

 

그녀는 수화로 손짓하며 까르르 웃었고 내게 입술모양을 읽을 수 있으니 수화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난 벌써 소녀가 좋아지려 하고 있었어. 더 이상 미소짓기 위해서 애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어린 소녀와 불경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않았지. 그녀는 박물관의 그늘 아래 독수리들이 득실거리는 전시로 뛰어드는 토끼와도 같았고. 혹은 피에 굶주린데다 호기심이 가득한 부자들이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곳에 남겨졌다는 점이 더 나쁠지도.

 

그 때 고용계약서의 조항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어. 바로 전시는 하루에 한 번 저녁에 진행한다는 조항.

 

나는 자신감에 찬 몸짓으로 수화를 해보이고 소녀의 안전을 확보하기위해서 몸을 일으켜세웠어.

 

"죄송합니다만 신사숙녀 여러분." 

 

내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지.

 

"예상치 못 한 상황으로 인해 오늘 저녁의 투어는 취소되었습니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어.

 

내 계약서 속의 투어관련 조항에서는 내가 몇명의 관람객을 투어에 참여시켜야 하는지는 전혀 적혀있지 않았고 말이야.

 

"아, 이런. 이제 겨우 왔단말이야!"

 

한 남자가 고함을 질렀어.

 

"걱정하지마세요. 박물관은 자유롭게 관람하셔도 좋습니다."

 

난 한쪽팔을 뻗어 심해전시관을 가르키며 말했어.

 

"앵글러피쉬를 깨우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전시관으로 사라지는 관람객들의 또각거리는 발걸음소리와 볼멘소리가 로비에 울려퍼졌고,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별빛이 소녀의 얼굴을 비추었어. 소녀의 신난 얼굴은 별빛을 반사시키고 있었지.

 

"이제야 평화롭게 투어를 시작할 수 있겠구나!"

 

물론 이 평화는 전부 거짓이지만. 감시할 사람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저 관람객들은 금새 내 앞에 서있는 이 아이보다도 말썽을 많이 일으킬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아마 그들의 제멋대로인 행동은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으니말이지.

 

"저 안에는 뭐가 있나요?"

 

소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어두운 홀 아래를 가르켰어.

 

"저 철문안에 있는 방 말이에요. 저 안에는 뭐가 있나요 가이드아저씨?"

 

"내가 박물관에 관해서 속속들이 알고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 안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단다. 열쇠도 없이 꽉 잠겨있거든."

 

"오, 그렇군요."

 

소녀는 샐쭉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나도 안단다.

 

난 소녀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미소 띈 얼굴로 음악과 예술 전시공간으로 안내해주었는데, 그 전시관은 그 소녀가 살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것들로 가득했고 소녀의 눈은 촛불이라도 켤 기세로 반짝였어.

 

예술전시관의 높은 벽과 천장은 쉭쉭거리며 끊임없이 변하는 모래의 흐름으로 이루어져있어. 한 순간 벽은 "별이 빛나는 밤"의 벽화가 되었다가 푸른색과 노란색의 모래가 이리저리 뒤섞이며 다른 유명한 그림으로 바뀌었어. 우리 왼편의 벽에는 "절규"가 나타났지. 소녀가 그녀의 손을 모래폭포속으로 넣어 손가락을 펼치자 마치 소금을 집어올리는 것 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흘러내렸어.

 

"너무 아름다워요!"

 

천장을 바라보며 수화로 말하는 소녀의 입은 떡 벌어져있었지. 나는 그녀가 내 입술을 읽을 수 있도록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어.

 

"여기는 그림만 전시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이걸 보렴."

 

우리는 한 손을 유리 캐비닛에 짚고 안을 들여다보았어. 한 쌍의 밝은 빛의 신발이 뒤편에서 계속해 색이 바뀌는 모래벽의 빛을 받아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아이보리색 실크 천 위에 놓여있었는데, 신발은 반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탈빛이 제대로 보일 정도로 빛이 나고 있었어. 유리 캐비닛 아래엔 서투른 댄서들이라고 적혀 있었지.

 

소녀는 내가 캐비닛을 열심히 두드리기 전에는 그다지 감명받지않은 것 같이 보였어.

 

그 두드리는 소리는 갑자기 죽어있던 신발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실크 천 위에서 박자를 타며 춤을 추게 만들었어. 춤은 다른 춤으로, 또 빙그르르도는 움직임으로 바뀌었는데 그들은 탱고춤을 추다가 우아하게 그 유명한 문워크스텝을 밟으며 춤을 마무리했지.

 

"와우, 저게 대체 뭔가요?"

 

소녀는 그녀의 손으로 유리캐비닛을 꾹 누르고 기대섰어.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가까이 갔다면 신발들이 그녀를 걷어 찰 수도 있었을거야.

 

"음, 어떤 사람들은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있지. 아주 끝내주는, 멋진 노랫소리말이야."

 

나는 새틴 천을 꺼내 유리창을 닦으며 말했어.

 

"어떤 사람들은 영혼이 담긴 움직임을 만드는 리듬을 가지고 있고. 여기있는 이 신발들은 그 차이를 메워준단다."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듣지 못하는 두 귀를 대신해 내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빤히 쳐다보았어.

 

"이 신발들은 6,70년대쯤에 만들어졌단다. 춤에 재능이 별로 없는 가수들을 슈퍼스타덤에 오르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모래폭포 앞에 놓인 또 다른 전시물을 향해서 소녀를 안내했어. 잠시동안 그녀의 눈에서 반짝인 빛과 머리카락 그리고 미소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딸과 내가 오랫동안 잊고있던 온기로 나를 가득 메워주었지. 아마 지금 너보다 내가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있을거란다 로지.

 

그녀는 자리에 앉아 내게 물었어.

 

"이건 뭔가요 가이드씨?"

 

소녀의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작은 흰색 펜이 흑연과 잿가루로 덮인 돌판위에 놓여있었어. 내가 돌판이 놓인 검은 플레이트 가장자리를 가르키자 소녀는 금색 플래카드위에 적힌 볼펜 스톤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내쪽으로 돌린 채 안달난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

 

"궁금하면 만져보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돌아서서 펜을 붙잡았어. 펜은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판위에 닿았어.

 

그 순간 갑자기 모래폭포가 흰색빛으로 빛나며 아주 작은 분홍색 점들이 그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마치 그냥 하얀 종이보다는 아트캔버스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어.

 

소녀의 손이 움직이자 검은색 모래로 만들어진 원이 모래폭포 위로 나타났지.

 

"아무거나 그려보렴 로지. 그 전시물이 니가 뭘 그리려고 하는지 알아채고 도와줄거야."

 

소녀는 처음에는 의아스러운듯 고개를 몇번 까딱였어. 이 8살짜리 완벽주의자녀석. 그러고는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소매를 걷어붙히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지. 정말, 정말로 말이야.

 

"저거 혹시 날 그린거니?"

 

내가 모래 벽을 보며 말했어. 계속해서 꿈틀대는 캔버스 속의 갈색 머리를 한 남자는 밤색 긴 코트를 입고 있었고 틀림없이 나였다고.

 

그림은 여덟살짜리가 그린 것 치고는 수준이 상당했는데 그건 우리의 전시물 덕이었지. 물론 소녀의 그림실력도 상당히 훌륭했고 말이야.

 

"와우! 정말 잘 그렸는걸 로지."

 

소녀가 또 다른 형체를 그리기 시작했을때 나는 그녀의 그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어.

 

"내 옆에 있는 건 누구를 그린거니?"

 

내 앞의 모래벽에는 검고 흐느적거리는 덩어리같은 형체가 떠올랐고 그것은 왠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았지만 끔찍한 모습이었어. 악마같은 길다란 손톱이 길고 야윈 팔에서 툭 튀어나와 흐느적대고 있었지.

 

"로지?"

 

소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었어.

 

벽의 그림속에 그려진 내 뒤의 그것은 일렁이고 있었는데, 모래의 흐름에 따라서 그 괴물은 계속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일렁였다고.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지. 그러다가 문득 거대하고 기괴한 턱이 그 역겹고 기다란 목위에서 쩍하고 벌어졌어.

 

"로지!"

 

그것이 그림속의 제 머리를 집어삼키고는 연필처럼 뾰족한 이빨로 어설프게 그려진 제 목을 물어뜯자 붉은 모래들이 모래벽에서 사방으로 튀어나와 박물관 바닥에 떨어지며 로지의 셔츠에 마치 핏자국같은 얼룩을 남겼어.

 

"로지! 대체 뭘 그리고 있던거니?"

 

나는 그녀를 팔로 감싸안으며 말했어.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어.

 

"제가 그린 게 아니에요."

 

난 소녀를 의자에서 들어올려 붉은 모래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는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녀는 내가 그려진 벽쪽으로 돌아서서 그림속의 나를 가르키며 말했지.

 

"봐요, 아저씨에요."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 박물관이 그녀에게 저걸 그리게 한 걸까?

 

"그리고"

 

로지의 떨리는 팔이 검은 형체를 가르켰어.

 

"저건 슬리피씨에요."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어. 나는 로지를 이 박물관의 아수라장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했지만 박물관은 내 생각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거야.

 

"이리오렴."

 

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로지는 내 손을 잡았어.

 

우리는 재빠르게 아랫층에 있는 실내 숲 전시관으로 향했어. 로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만해. 더 이상의 모험은 하지 않겠어. 우리가 그곳을 떠나는 동안 슬리피씨는 고개를 돌려 그 흐리멍텅한 눈구멍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로지에게 알려주진 않았어.

 

숲 전시관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멀리에 있는 다른 관람객 몇몇을 보았어. 그들은 깔깔대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난 소녀의 손을 꼭 잡고 계속해서 걸었어.

 

한동안 숲 전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약간 진정이 되기 시작한 나는 소녀에게 이곳의 일부분은 커다란 새장이고 유리천장을 통해 낮동안 새들이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안심시켜주려 애썼어.

 

비록 오늘 저녁에는 그저 약간의 달빛만이 이 박물관 실내의 숲을 비추고 있었지만 말이야. 로지와 나는 근처의 몇몇 새들이 나무껍질을 뜯는 소리를 들으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지.

 

"조용히, 로지."

 

말하는 대신 수화를 통해서 말했어.

 

"알겠어요. 조용히 해야한다는거죠?"

 

나는 잘 다듬어진 나무 사이에 꼭 맞게 끼워진 전시물을 가르켰고, 주변은 어두웠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형체를 구분하기에는 충분했어.

 

"저 나무는 꼭  사람처럼 생겼네요."

 

소녀가 수화로 말했어.

 

"왜냐면 사람이니까 그렇단다."

 

내가 속삭이자 소녀는 내 손을 꼭 잡은채로 눈을 커다랗게 떴어.

 

"어떤 실험이 잘못되는 바람에 우리는 이 사람을 여기로 데려왔단다. 그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야. 그는 지금 뿌리를 통해서 영양을 흡수한단다. 혹은 그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멍청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기도 하고."

 

어두운 숲은 소녀가 유리에 가까이 다가가려 풀숲을 헤치는 소리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했어.

 

"로지. 너무 시끄럽게 하면 안된단다."

 

내가 속삭였어.

 

"이 사람은 이름이 뭐에요?"

 

"이름은 없어."

 

나는 부드럽게 소녀를 전시물에서 약간 떨어뜨려놓으며 말했어.

 

"하지만 몇몇 손님들은 그를 잠든 구울이라고 부른단다. 그는 비교적 위험한 편은 아니지만 불쌍한 관리인 중 하나가 이 근처에서 잠이 든 적이 있는데 그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단다."

 

소녀는 팔을 둘러 나에게 매달렸어.

 

"사람들이 말하길 구울은 꿈속에서 너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해. 그리고 니가 정말 피곤할때는 심지어 잠들지 않아도 잡아먹힐 수 있단다."

 

소녀를 겁주기 위해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는지 로지는 내 팔을 당겨 문을 향해 서둘러 걸었다. 널 놀라게해서 미안하다 로지.

 

우리가 뒷문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두마리의 파란 나비가 날아와 로지의 머리위에 앉았는데 로지가 한마리의 나비를 내 손가락 위에 올려주려는 순간 뒤쪽에서 나뭇잎이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어.

 

한심한 관람객들 중 하나가 우리를 찾아낸 모양이었는데 그는 숲 솦을 마구잡이로 헤치며 걷다가 나무사이의 캐비닛에 닿았고, 그 멍청이가 유리를 문지르자 시끄러운 소리가 났어.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는 유리를 내리쳐 부숴버렸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새장방향으로 달려나가 복도로 빠져나갔지.

 

로지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녀를 붙잡고 있었어.

 

"괜찮단다 로지. 뒷문으로 가자."

 

우리는 새들이 나무껍질을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장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또 달렸어.

 

그 순간 새장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우리를 이곳에 가둬 버렸지.

 

난 녹슨 문틈새를 강제로 벌려서 열어보려했지만 문은 딸깍거리는 소릴 내며 무언가에 막힌 듯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어. 약간 벌어진 문틈새는 내 손가락을 간신히 넣을 수 있을정도가 되었지.

 

"슬리피씨. 슬리피씨가 오고 있어요."

 

"뭔가 문을 막고 있어."

 

내가 낑낑대며 말했고 소녀는 갑자기 내 다리를 작은 주먹으로 마구 두드렸어.

 

소녀는 계속해서 내 한쪽 다리를 마구 두드렸어. 로지는 내 검은 양복 바짓단 뒤에 숨어 두려움에 찬 얼굴로 가짜 나무들이 즐비한 뒤편을 무언가 찾는 듯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었어.

 

저 먼 나무들 사이로 불쑥 솟은 형체가 보였지. 그건 타버린 통나무같이 울퉁불퉁하고 새카맸어. 그것의 덜렁거리는 턱은 커다랗고 끔찍하게 벌어져 있었고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 멍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어.

 

"로지.."

 

나는 소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어.

 

"로지. 괜찮아. 저건 우릴 해칠 수 없단다."

 

소녀는 울 것 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어.

 

"괴물."

 

소녀는 수화로 말했어.

 

"우리가 잠에 들지만 않는다면 우릴 건드릴 수 없단다. 깨어있기만 하면돼. 알겠니?"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온화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금새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어.

 

"슬리피씨."

 

소녀의 눈이 바닥을 향하기 전까지 우리는 한동안 시선을 맞추고 있었어.

 

"로지. 침착하게 내 질문들에 대답해줄 수 있겠니?"

 

나는 로지와 나무사이에 있는 괴물을 번갈아가며 쳐다봤고 로지는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어.

 

"박물관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잤니?"

 

말을 건네는 중에도 내 눈은 우리 뒤쪽의 움직임에 못박혀있었어. 저 구울의 다리가 있어야 할자리에 있는 새카만 그루터기같은 것을 움직이는 육중한 움직임은 마치 뿌리없이 뽑힌 나무같았어. 그 느린 걸음걸음마다 괴물의 몸통은 마치 뼈가 부러지고 뒤틀어지는 듯 소름끼치게 깨지는 소릴 내며 다가왔고 그것의 커다랗게 벌어진 입은 로지의 아름답고 영민한 머리를 통채로 삼킬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지.

 

"로지. 잠은 좀 잔거니?"

 

쿵.

 

"로지."

 

콰광. 쿠궁.

 

그 순간 마치 열병에 걸렸을때 보는 허깨비처럼 나는 날파리들이 소녀의 눈꺼풀과 입에서 날아오르는 환영을 보았어. 내 꿈속에서 봤던 죽은 내 딸 소피아와 똑같은 환영을 말이야. 저 예뻐요, 아빠?

 

난 퍼뜩 정신이 들었어.

 

"로지, 제발!"

 

난 소리를 지르며 소녀를 흔들었어.

 

쿠궁. 쿵. 쿵. 쿠구궁. 쾅.

 

어떻게든 이 소녀를 내보내야만 해. 이 아이까지 잃을 순 없다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녀를 내 어깨에 들쳐메고 다른 문을 향해 달렸어. 그녀의 머리는 내가 달리는 동안 여기저기로 흔들거렸고 내가 멈추어 섰을 때 나는 구울을 똑바로 볼 수 있었지. 그것은 계속해서 가까워져 왔고 한 20걸음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었어. 그것의 몸뚱아리는 여기저기 갈라져서 마구 흔들거리고 있었어.

 

"꽉 잡으렴!"

 

나는 로지를 안으며 말했어. 나는 다리를 쭉 뻗어 문을 발로 걷어찼는데 그와 동시에 내가 내뱉은 나즈막한 욕설은 우리 뒤에서 들리는 역겨운 소리에 묻히고 말았지. 나는 오로지 로즈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괴물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구두로 달팽이를 밟아죽이는듯한 소리가 났어.

 

"들어가!"

 

내가 말하며 로즈를 바닥에 내려주었어.

 

이번에는 한쪽발을 반대쪽 문에 기댄채로 문을 걷어찼어. 내가 지나갈 만큼의 공간을 벌어지게 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문을 꾸욱 누르자 로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은 확보할 수 있었지. 난 순간적으로 문 건너편과 홀에 있는 부자들에 대해서 걱정했고 이건 마치 끝나지 않는 긴 악몽같았어.

 

난 마침내 문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고,

 

문을 막고 있던 부자들은 밝은 빛아래에 갑자기 노출된 바퀴벌레들처럼 널부러졌어. 그들은 홀을 가로질러 달리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고있었지.

 

"거의 다 됐었는데!"

 

부자무리 중의 남자 하나가 코너를 돌며 외쳤고 그가 달리는 동안 목소리가 멀어져갔어.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어. 언제까지고 이렇게 단순히 재미로 나와 박물관을 맘대로 고문하게 둘 수는 없단말이야.

 

"여기서 기다리렴."

 

난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떨며 울고 있는 로지에게 말했어.

 

나는 두 다리로 일어서서 그들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지.

 

역겨운 부자놈은 계속해서 달아나고 또 달아나며 좁은 복도의 벽에 손을뻗어 훑어댔는데 복도 양 옆에는 우리 박물관의 온실이 있었어.

 

넌 로지를 거의 죽일 뻔 했어.

 

계속해서 내달렸고 나는 놈을 거의 다 따라잡았어.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까지 말야.

 

그만 도망쳐.

 

그러던 중 그놈은 멍청하게도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고 한쪽 벽으로 굴러 넘어지려다가 반대쪽으로 완전히 넘어져서는 유리를 부수고 온실 안으로 반쯤 굴러떨어져버렸어.

 

놈은 얼굴에서 스펙타클한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창백해졌는데, 머리에 박살난 유리조각이 박힌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을 뿐이었지. 온실로 새어들어온 별빛은 그의 얼굴에 초록색의 빛이 되어 내려앉았어.

 

"도와줘..."

 

놈은 내게 거친 태도로 부탁했지. 안전한 유리벽 안쪽으로 당겨달라는 듯이 한쪽 손을 내게 뻗은채로 말이야.

 

온실의 안쪽에는 우리 온실의 자랑거리인 사람조차도 삼킬 수 있을만큼 거대한 파리지옥풀인 홀리가 보였어. 저녁별빛에 비춰진 그녀는 꿈틀거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 그녀는 아주 거대하고 아름다운 식물이야. 굶주려있기도 하고.

 

남자는 고개를 뒤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를 발견했어. 그는 꼼지락대고 꿈틀대며 유리에서 낀 상태를 벗어나려 낑낑댔어.

 

나는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주려다가 멈추었어.

 

문득 로지의 빛나는 미소가 내 머리속에서 뜨거운 쇳물처럼 불쑥 떠올랐어. 내 딸 소피아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미소. 이 놈이 없애버리려고 했던 그 미소가 말이지.

 

나는 팔을 뒤로 젖혔어.

 

"나 좀 꺼내줘! 빨리!"

 

놈이 꽥꽥댔어.

 

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놈을 내려다보았지만 별로 길진 않았어.

 

홀리는 재빠른 단 한번의 움직임으로 낚아챘고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초록색 손가락들은 놈의 몸을 마치 이끼투성이 붕대처럼 단단히 옥죄었어.

 

난 고용계약을 방금 막 어겼고 벌을 받게 되겠지.

 

초록색 침을 뚝뚝흘리는 파리지옥의 입술이 우물댈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팔이나 다리가 아무렇게나 튀어나왔다 들어갔어.

 

난 로지에게 돌아와 손을 꼭 붙잡고 저녁내내 그녀가 박물관 바깥뜰에서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탈 때까지 놓지않았어.

 

부숴진 유리와 탈출한 전시물이 대부분의 피해상황을 차지했고 나는 몇시간 내내 바닥을 쓸어야만했어.

 

모두가 떠나고 난 뒤 나는 홀로 탁자앞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렸어. 나는 손님을 죽게 내버려둠으로써 이미 계약을 어겨버렸으니까. 그들은 언제나 비열한 개자식들이었지만 한 놈은 반드시 죽어야만했다고.

 

박물관에 고요가 찾아온지 몇시간만에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로지의 온기는 사라져 버렸고 모든것은 다시 얼어붙어버렸어.

 

내 딸이 보고싶어. 로지처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나를 괴롭힐 또다른 부자놈들이 다음주에 몰려올테고 나는 도망칠 곳조차 없었어. 난 전날 저녁에 들렀던 해양 전시관을 생각했어. 그곳에 사는 앵글러피쉬와 나는 조금도 다르지 않아.

 

사랑한다, 소피아.

 

나는 완전히 지쳐버린채로 탁자에 털썩 엎드렸어. 나는 포갠 팔위에 머리를 기대 잠에 빠져들고있었지.

 

네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내 딸. 그 날파리들을 또 보고싶지는 않거든.

 

잠깐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리고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지.

 

15년만에 처음으로, 박물관의 전화가 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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