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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번역/단편

[레딧공포번역글]10년만의 동창회.

by 김B죽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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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동네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구도 코퍼 힐을 영원히 떠날 순 없다."

 

지난 몇년 동안 저는 이 말을 어느정도 부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코퍼 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로는 동네에 한번도 얼씬거린 적이 없거든요.

 

저는 다른 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공부를 이어나갔고 계속해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예정이었어요. 대부분의 휴일은 제가 2학년때 화학 연구실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들과 보냈죠. 그래서 우리가 헤어졌을때 그녀만이 아니라 제 사회생활의 대부분도 함께 제 삶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제 고등학교로부터 온 편지를 우편물 더미 속에서 발견했을 때, 저는 상당히 외로움을 느끼던 바로 그 시기였어요. 저는 누군가 제 주소를 알고있다는 점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봉투 안에는 초대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던 디자인의 초대장은 고급스러운 푸른색에 금색 펄이 섞인 바탕에 깔끔한 은색 테두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10주년을 축하하며! 재커리 R 귀하를 코퍼힐고등학교 동창회에 초대합니다.'

 

그 아래로는 시작 시간과 학교의 주소가 적혀있었죠.

 

심지어 뒷 면에는 손으로 적은 메시지까지 있었습니다.

 

'멀리 타지에서 살고있는 거 알아 잭. 그래도 니가 올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폴이랑 나는 참석을 확정했고 어쩌면 아서도 올 지 몰라. 모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꼭 와주기를 바라면서. -빈스 K, 코퍼힐고등학교 동창회 추진위원회 부회장-'

 

빈스는 한 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아시다시피 코퍼힐같이 작은 시골동네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같은 친구들과 다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저의 경우에는 아서,폴 그리고 빈스가 그랬습니다.

 

제 어린시절의 대부분은 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우리 넷은 함께 스카우트활동을 하고 같은 스포츠 팀에서 뛰고 대부분의 수업도 함께 들었죠. 주말과 심지어 주중의 밤에도 우리의 부모님 몰래 빠져나와 밤새 비디오 게임을 하며 부모님의 눈을 피해 빼돌린 싸구려 맥주따위를 마시며 보내곤 했어요.

 

우리 넷은 정말 가까운 사이였는데, 왜 졸업 이후에 저는 그들을 이렇게 외면했던걸까요? 언제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 동창회로 저는 제가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 다시 가까워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단 하룻밤만이라도 제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란 점은 최근 외로움을 느끼던 저에게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했어요.

 


 

제가 코퍼 힐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한시간가량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인한 정체가 있었거든요. 희미하게 져가는 저녁노을속에서 마을에 들어선 저는 그곳이 제 기억보다도 훨씬 조용하고 황량하게 느껴졌어요. 금요일 밤이면 사람들이 모여들던 바는 군데군데 판자로 기워놓은듯한 모양새를 하고있었고 도로위의 차들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길가에는 쥐새끼한마리 보이지 않았죠.

 

제 기억에는 분명 학교는 법원과 시청, 우체국등이 밀집된 동네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GPS는 저를 높은 옥수수 밭 한가운데에 나있는 낯선 길로 안내했습니다. 제가 차를 세우고 주소를 한번 더 확인하려는 순간 헤드라이트 시야에 검정과 붉은색의 특이한 학교 간판이 보였어요.

 

'코퍼힐고등학교:애국자들의 집'

 

그 뒤로 보이는 높은 벽돌 건물은 제 기억 속 그대로였습니다. 높고 큰 중앙과 그 양 옆으로 쭉 뻗은 구조의 건물에 잔뜩 나있는 네모난 창문안으로 움직이는 형상이 여럿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죠.

 

'코퍼힐고등학교 10주년 동창회.'

 

중앙 현관 입구 위에 걸린 현수막아래로 낯익은 형체가 허둥지둥 뛰어들어가는것이 보였습니다.

 

"아서."

 

저는 미소 띈 얼굴로 중얼거렸어요.

 

아서를 보자 저는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는 저를 제외하고 졸업 이후 마을을 떠난 유일한 사람이었기때문에 어쩌면 그도 저와 비슷하게 약간 외지인이 된듯한 기분을 느낄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나도 달라진 건 없을거야. 저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느낌이 좀 쎄했어요.

 

우선, 공기중에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오래 묵은듯한 텁텁함이 가득했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희박하기까지 해서 계단을 오를때마다 숨을 점점 더 깊게 몰아쉬어야만 했어요.

 

게다가 학교의 위치는 여전히 이상합니다. 이렇게 큰 건물의 위치를 이동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황량하고 어딘지 기분나쁜 시골에서는 뭐든지 실제보다 더 외지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저는 걱정을 멈추려 애썼습니다. 조금만있으면 어쨌거나 저를 기다리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테니까요.

 

안쪽의 중앙 복도는 풍선과 꽃장식, 형형색색의 기다란 종이장식과 삼각 깃발로 장식되어있었고 동창회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작은 배너가 걸려있었습니다. 저는 각종 스낵과 팜플렛들 그리고 모금에 관한 안내책자가 놓인 테이블 위를 살펴봤어요.

 

스피커에서는 분위기에 맞춘 캘빈 해리스의 노래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동창회에 필요한 모든것이 다 있었지만 딱 한가지만 없었어요. 바로 사람들이요.

 

저는 아무도 없는 "체크인"마크가 붙은 테이블로 다가가면서 다들 어디로 가버린걸까하고 생각했죠. 동창회 진행장소가 바뀌었나? 제가 늦는 바람에 놓친걸지도요.

 

서명란에 서명을 하면서 저는 저 외에도 도착한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했다고 표시되어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앨리스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합주부에서 저와 악보스탠드를 함께 보던 사이였어요. 그 당시 저희의 지휘자는 굉장히 깐깐하고 잔소리도 매우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앨리스도 그가 자주 괴롭히던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항상 방과후에 그녀를 위로해 준 뒤 데이트 신청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한번도 그런적은 없었어요. 대신 빈스가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둘은 사귀게 되었죠.

 

그건 항상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저는 빈스에게 앨리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했었고 얼마지나지않아 그 둘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는 굉장히 당혹스러웠지만 제가 오랫동안 망설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뭐.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이던 저의 눈에 '환영'문구가 적힌 이중문의 입구가 보였습니다. 그 문은 체육관으로 통하는 문이었는데 홈커밍이나 졸업파티, 스포츠 행사 등 대부분의 큰 행사는 체육관에서 연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음악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리는 것을 알아채고 신이나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든 소리는 사라졌고 저는 기묘한 적막속에 혼자 남겨졌어요. 굉장히 당황스럽게도 체육관 안은 복도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죠.

 

임시로 만든 바 위에 놓인 여러종류의 술과 반쯤 마신 컵과 먹을거리들 그리고 중앙을 비워서 만든 댄스플로어까지 누가 봐도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파티가 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제가 또 뭔가 놓친걸까요? 다들 어디로 간거야?

 

"저기요?"

 

저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방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남자탈의실 입구까지 왔고 곰팡내와 땀냄새가 섞인 그곳의 공기를 맡는 순간 제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이곳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폴이 저에게 화를 낸 어떤 날에 대한 기억이었어요. 폴은 보통 굉장히 무던한 편이었지만 한번 화를 내면 굉장히 거칠어지는 편이었죠. 그가 저에게 화를 냈던 그 날, 아니 그랬나? 그랬다면 왜 그랬었지?

 

저에게 바싹 붙어 소리를 지르던 폴의 뜨거운 입김이 제 얼굴에 닿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살짝 그를 밀어내자 그는 제 머리를 라커룸에 쳐박았어요.

 

그 후부터의 제 기억은 희미합니다. 피웅덩이와 제 불에 닿던 폴의 주먹, 저희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러대던 친구들. 그들은 제가 일방적으로 맞는걸 보며 '싸워라!'하고 외쳤지만 그걸 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 일을 몇년동안 아예 잊고 지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었을까요? 혼란에 빠진채 현기증을 느낀 저는 포토부스로 꾸며진 벤치 위에 앉아 이 억눌려있던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렸어요.

 

폴에게 계속 얻어맞던 저는 사람들사이에서 빈스를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째서인지 그곳에 없던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빈스는 저를 도와주지 않았죠. 폴은 아서가 끼어든 후에야 겨우 마지못해 제게서 떨어졌습니다.

 

그 멍들이 낫는데는 몇주나 걸렸지만 폴이 뭔가 처벌을 받거나 사과를 했었던가? 당연히 그랬을겁니다. 그 후에도 저희는 계속 친구로 지냈으니까요.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제 어깨에 느껴진 기묘한 압박감과 번쩍하는 빛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앉은 벤치 앞에 서있던 카메라에서 나온 빛은 꺼졌지만 카메라 주변에는 그걸 조작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어떻게 된거지? 자동으로 계속 사진이 찍게 되어있는걸까요?

 

다른 모든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 생각 역시 하나도 말이 되지 않아요. 다들 어디로 사라진것이고 제가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요? 여기로 오는길에도 사람들을 보았고 심지어 아서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 봤지만 여태껏 동창회에서 저는 누구도 만나지못했습니다.

 

저는 아서에게 누군가 만났는지 문자를 보냈습니다. 몇 년만의 연락이니 이미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지만 딱히 다른 수가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일단 보내보기로 했고 다행히 답장이 빠르게 왔습니다.

 

'와 진짜 오랫만이다! 폴이 방금 나한테 전화했는데 다들 3층에 있는 미넬리씨의 교실에 있대. 나도 그리로 가는 중이야 거기서 보자.'

 

저는 도대체 왜 동창회를 체육관에 잘 준비해놓고 3층으로 장소를 옮긴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제 기억에 그곳은 교실들과 몇몇 행정관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전 윗 층으로 향했습니다. 아서는 이미 그리로 향했고 다른 친구들도 아마 거기에 있을테니까요.

 

학교에 대한 제 기억을 더듬으며 저는 체육관에서 2층으로 이어진 작은 계단을 뛰어올랐습니다. 거기서 몇개의 교실을 지나면 중앙 계단에 도착하고 거길 통해서 목적지로 갈 수 있었죠.

 

학교가 이렇게 조용하고 음산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제 발걸음 소리는 복도에 울리고 교실들은 기묘할 정도로 아무 장식도 없이 텅 빈 채로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수학 수업을 듣던 교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수업을 끝마친 어떤 날 모여있던 학생들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죠.

 

마리, 미셸 그리고 애비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저와 함께 자란 사이였고 저와도 잘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그들은 수줍음이 많은 동급생 모르간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를 온갖 멸칭으로 불러댔는데, '창녀' '걸레' '개년' 같은 것들이었죠. 모르간은 그들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 애들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어요. 괴롭힘은 점점 일상적으로 변했고 모르간이 우는날도 많아졌습니다.

 

모르간이 어떻게 됐더라? 다른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모르간 역시 제가 아주 어릴적부터 알던 사이입니다. 그녀는 조용하긴 했지만 정말 착한아이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간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겁니다. 노골적으로 성차별적이고 이중잣대로 가득한 고약한 누가봐도 가짜인 그 소문은 우리 고등학교에 빠르게 퍼졌어요. 모르간의 친구들은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혼자 걷거나 밥을 먹을때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죠. 그러다 또 갑자기 어느 날 그녀는 그냥...사라져버렸어요. 저는 항상 모르간의 가족이 이사를 갔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마리와 미셸 애비 그 세명은 항상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저는 단 한번도 그들이 모르간을 대하듯 다른사람에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닌 코퍼힐고등학교는 우리안의 무언가를 끌어내는 곳이었습니다. 이 건물이, 이 장소가 이 곳의 모든것이 그들의 아니 우리의 영혼을 먹어치워버렸으니까요.

 

나도 모르간을 괴롭히는데 동참했었나? 아마 아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괴롭힘이 시작될때 저는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함께 앉자고 제안하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저는 중앙층계에 도착했고 3층을 향해 계단을 오를때마다 어떤 두려움이 제 안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위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을 나는 알고있지 않았나?

 

폴과 빈스. 그 둘과 아서가 부딪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서가 단 한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아서 생겼던 소문때문일수도있고 아니면 아서의 유난히 작은 몸집이었을지도요. 아니면 아서가 폴이 저를 공격할때 감쌌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죠.

 

이유가 어찌되었건 폴과 빈스는 저 몰래 아서에게 아주 잔혹한 장난을 치기로 했고 어느날 방과후 그들은 아서를 3층으로 불러내 그를 붙잡고 아서의 라커룸에 그를 쑤셔넣으려고 했습니다.[각주:1]

 

90년대 시트콤에서 그런 장면이 자주 등장하긴했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라커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서가 얼마나 작고 말랐던지에 관계없이 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건 오히려 상황을 나빠지게만 했어요.

 

나중에 아서가 저에게 말해주길 폴과 빈스는 아서를 라커룸의 철제 프레임에 끊임없이 쾅쾅 부딪히며 크게 웃어댔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아서를 놔주었을때 그는 온 몸에 멍이 든 채였죠.

 

다른 끔찍한 일들도 더 있습니다. 더 많은 피해자와 폭력들이요. 저는 이곳이 얼마나 끔찍한 곳이었는지 생각이 났습니다. 저, 그리고 아서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이곳을 떠난것도 당연했어요.

 

불쾌하고도 기묘한 점은, 지난 몇년동안 제가 이 모든것을 잊고 지냈다는 겁니다. 제 고등학교에서의 기억은 전부 행복하고 긍정적인 것들로 대체되어 있었죠. 아서도 그 우정과 유대감같은 가짜 기억들에 속아 이곳으로 온걸까요?

 

저는 마침내 3층에 도착했습니다. 머리위에 달린 형광등이 깜빡거릴때마다 낡아빠진 라커룸과 쓰레기들 그리고 바닥에 쌓인 먼지가 보였어요.

 

저는 미넬리씨의 교실로 다가갔습니다. 복도쪽으로 난 어두운 창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요. 뚜렷하지않은 웅얼대는 소리였지만 누군가 연설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연설을 멈추자 박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문 앞에서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만나기위해 4시간이나 달려온 사람들이 이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일을 겪고나니 차라리 교실에 아무도 없기를 바라기도 했죠. 만약 그렇다면 저는 당장 이 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거고요.

 

놀랍게도 제가 손을 대기도 전에 문이 저절로 느리게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빛이 들어오는 교실 안에는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게 맞다면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생물학 수업에서 사용될 법한 뼈다귀 모형들이 잔뜩 있었죠.

 

그 모형들은 고요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어요. 음료를 들고 서있는 채로, 책상에 앉은채로 또 스피커 주변에 모인채로요. 이것들은 전부 모형이겠죠? 미넬리씨는 역사 선생이었더라도 말이에요?

 

저는 머릿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만한 답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애썼습니다. 이건 그냥 엄청 공들인 장난이 아닐까요? 빈스와 폴이 저를 꾀어내서, 아니 어쩌면 아서도 함께 꾀어내서 저희 둘을 놀리려는걸까요? 그 둘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이거야말로 이 둘이 할만한 일이니까요. 이 모든것, 방 안을 채운 해골 모형들까지 전부 좀 과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제가 들었던 소리는 누가 낸걸까요? 그것도 전부 장난의 일부일까요?

 

젠장, 이 모든게 그냥 저를 놀리기 위한 거라면, 나중에 꽤나 창피하겠어요. 저는 교실 밖으로 나오려했습니다.

 

"재크."

 

복도에서 누군가 쥐어짜내는듯한 목소리로 저를 불렀습니다.

 

"이런 장난이 재밌다고 생각하나본데-"

 

"재크, 제발 도와줘!"

 

목소리는 제 말을 끊고 끼어들었어요. 목소리의 주인은 아서였습니다. 가까운 복도에서 들리고 있었죠.

 

아서의 목소리는 심각한 위험에 쳐해있는듯했기 때문에 저는 곧바로 달려나와 목소리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복도 한 구석,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와 아서의 라커룸이 있는 곳에 도착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저는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서! 아서!"

 

저는 아서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옆의 라커룸이 흔들렸고 깜짝 놀란 저는 뒤로 물러섰어요.

 

라커룸의 문은 닫혀있었지만 잠겨있진않았습니다. 저는 라커룸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제가 전혀 예상도, 대비도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안에는 아서가 있었는데 정확히는 그의 몸통이 있었습니다. 그의 팔다리는 보이지않았고 무언가가 그의 남은 부분을 깊은 어둠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죠. 그 어둠은 라커룸의 벽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을 간신히 외치는 아서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서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었고 저는 그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완전히 끌어당겼고 라커룸의 어둠속에서는 더 많은 피가 복도로 흘러나왔습니다.

 

"니가 와줘서 정말 기뻐."

 

높낮이가 없이 단조로운 목소리가 제 뒤에서 들렸어요. 제가 휙하고 돌아보자 두개의 팔이 라커룸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피부가 없는 그녀의 번들거리는 몸에서는 피가 계속 떨어져서 제게 다가오는 내내 바닥에 핏자국을 남겼죠.

 

"니 첫사랑도 기억못해? 10년동안 그렇게 변하지는 않았는데."

 

"애-앨리스?"

 

제가 뒤로 물러서며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라커룸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는 천천히 밖으로 기어나오는 피투성이의 팔들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생존본능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저는 즉시 달려나갔고 있는 힘껏 중앙 계단으로 뛰었습니다. 양 옆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형체들은 저를 붙잡으려 했어요. 달려나가는 내내 열린 문들을 통해 교실 안쪽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안은 미넬리씨의 교실처럼 해골모형이 잔뜩 있었습니다.

 

제가 중앙 계단에 다다랐을때, 뭔가 키가 큰 형체가 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게 어때?"

 

제게 묻는 낮고 익숙한 목소리는 폴의 것이었습니다.

 

"함께 완벽해지는거야. 학급 전원이 다시 함께 모이는거라고. 옛날처럼."

 

그가 저에게 달려들었고 저는 간신히 그를 피했지만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차하는 순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계단 하나하나에 부딪힐때마다 고통이 엄습해왔죠.

 

마침내 바닥에 닿은 저는 어지러운 상태로 온 몸에 퍼지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두 발로 간신히 일어섰습니다.

 

재빠르게 위를 살펴본 저는 저 피투성이의 형체들...어쩐지 제 오래전 학교 친구들과 닮은 것들이 확실하게 저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러는동안 온도가 확실히 느낄 수 있을정도로 올라갔는데, 제 주변을 둘러싼 벽이 칙칙한 회색에서 짙은 붉은색으로 착착 바뀌어갔습니다.

 

제가 남은 층계를 거의 기어내려가서 마침내 1층 복도에 도착했을 때 건물이 크게 흔들렸고 저는 넘어지고 말았어요. 제 발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저는 출구를 향해 가능한 빠르게 절뚝거리며 나아갔습니다.

 

주차장에 있는 제 차를 향해 가는동안 저는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않았습니다.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가 제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기시작했죠.

 

자동차 백미러를 통해 본 학교는 지진이라도 난 양 마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도로도 흔들리기 시작한 탓에 제 자동차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나아갔습니다. 도로에서 벗어나 옥수수밭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위해 저는 운전대를 꽉 붙잡고 중앙선을 따라 나아갔어요.

 

제가 다시 한번 뒤돌아 봤을때 학교는 어째서인지 전보다 가까워져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죠? 학교가 나를 따라오고있나?

 

저는 엑셀을 꽉 밟았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제 옆으로는 옥수수밭이 마구 지나갔어요.


제가 마을외곽에 위치한 가장 가까운 주간 고속도로 초입쯤에 다다랐을때 경관이 제차를 세웠습니다.

 

경관이 다가오는 것을 백미러로 지켜보면서 저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언제든지 도망칠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경관따윈 알바아니야. 사실 몇 분 전쯤 옥수수밭을 빠져나온 이후로 무언가 저를 쫓는 기색은 없었지만 저는 여전히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지금 이 앞을 백번은 지나갔구나 얘야."

 

경관이 말을 건네자 저는 이 상황을 도무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채로 침묵했습니다.

 

경관은 미심쩍어하는 눈빛으로 제 운전면허증을 확인했습니다.

 

"너는 돈과 프랜의 아들이로구나, 맞지? 이 마을을 떠났던?"

 

그의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을에는 왜 돌아온거냐?"

 

"그게, 어, 졸업 10주년 동창회 때문에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경관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럴리가."

 

경관은 고개를 내려 당황한 제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정확히 어디서 그 '동창회'가 열렸지?"

 

"학교에서요."

 

저는 대답을 하면서도 경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뭐가 이상한거였을까요? 그리고 제가 규정속도 제한을 50마일은 넘겼던가요? 이런걸로 감옥에 가지는 않겠죠?

 

"잠깐 기다려라."

 

경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경찰차로 돌아가 무전을 통해 무언가 긴 대화를 하더니 몇 분뒤 돌아왔습니다.

 

"얘야, 마을을 떠나라.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마. 그 동창회같은 일은 다시는 하지말라고. 알아듣겠니?"

 

"네, 네 그럴게요."

 

저는 깜짝놀라 대답했어요.

 

"그럼 당장 떠나라."

 

경관은 명령조로 마지막 말을 건넸고 저는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곧바로 떠났습니다.

 


저는 무슨일이 일어났던건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코퍼힐고등학교나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와 딱히 연락을 하고싶은 생각은 없었죠.

 

비록 제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 행운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거라는 점 말이에요.

 

제 발목이 다 나으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 낫고나면 저는 사교 클럽에 가입해 새 친구들을 사귀어 볼 생각입니다. 코퍼힐에서의 일 이후 저는 과거는 완전히 잊기로 했거든요.

 

동창회 이후로 2주가 지난 오늘 반송주소가 없는 편지가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그 안에는 한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는데 사진 뒷편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사진속의 저는 포토부스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 옆으로는 제 어깨에 팔을 두른 빈스가 서있었습니다. 푸른 셔츠를 입은 그는...평범해보였습니다. 피부도 있고 여기저기 핏자국이 가득하지도 않았어요.

 

저희 뒤에는 폴이 멍청한 미소를 짓고 몸을 숙인채 서있었습니다. 폴 역시도 평범한 20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죠. 폴의 옆으로 애비, 모르간 그리고 미쉘이 함께 팔을 두르고 포즈를 취하고 서있었습니다.

 

그 사진은...완벽하게 평범하면서도 동창회에서 찍을법한 사진이었어요.

 

사진에 적힌 글귀는 이랬습니다.

 

'비록 우리 생각보다 니가 일찍 떠나긴 했지만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어 재크! 부디 언제든 다시 놀러와! 결국엔 그 누구도 코퍼힐을 완전히 떠날 수 없거든. -빈스 K, 코퍼힐고등학교 동창회 추진위원회 부회장-

 

P.S. 아서가 마침내 우리와 함께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어쩌면 너도 그렇게 될거야. 우리의 20주년에는 말이야.'

 

여기까지 쓰인 글귀는 검은잉크와 멋들어진 필기체로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글귀는 크기도, 글자도 엉망이었고 짙은 붉은색으로 적혀있었습니다.

 

'그때보자, 친구. 더 빨리는 아니더라도말이야.'

 

 

 

 

 

 

 

 

 

 

  1.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작은 사물함이 아닌 미국 하이틴영화같은데 나오는 길쭉한 철제사물함이에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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