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저를 길에서 만나 제게 무슨일을 하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저는 산업용 세탁 업체를 위한 컨설팅 재택근무를 한다고 할겁니다. 그게, 그러니까..제게 주어진 핑곗거리니까요.
진실은요? 제 일은 그보다도 더욱 간단합니다. 매 주 금요일 밤, 잘 차려입고 시내의 지정된 극장으로 가서 어떤 공연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전부에요. 한 주에 단 몇시간만으로 억대 연봉에 요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복지까지 주어지죠. 알아요 압니다. 너무 말도 안되게 좋은 일같이 들린다는거. 아마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일을 하려고 무슨 짓이든 하려 할겁니다.
어쩌면요. 적어도...제가 관람하는 공연이 어떤 종류의 공연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제 말을 듣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거에요. 저는 열대우림보호 기금에 매 년 수백만원을 기부하고 저와 제 아이들은 매 주 봉사활동을 다닙니다. 저는 아주 독실한 교인이고 죽고나면 천국에 갈 거에요. 결론적으로 저는 제 스스로가 누군가를 해친적은 단 한번도 없는 사람입니다. 살아있는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조차도 없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지켜본 것 뿐인데 그 누가 저를 비난 할 수 있죠?
이 모든일은 3년 전 제가 가장 절망적이었던 시기에 들어온 어떤 제안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알려준 것은 그저 매 주 금요일 밤 시내의 가장 멋진 극장으로 가서 어떤공연을 관람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뿐이었죠. 단지 그 뿐이었어요. 저는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내가 극장이나 발레, 오케스트라 같은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나? 나를 어떤 유명한 비평가와 헷갈린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전화를 통해 전문적인 비평능력은 전혀 필요치 않다고 저를 안심시켜주었어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 곳에 증인으로 참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고 저는 이게 사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지만 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다단계나 리조트 회원권판매같은 이야기를 좀 듣게 되는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다 듣고난 뒤 정중하게 거절한 후 용돈이나 벌어 나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극장 앞에 차를 세운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수십의, 어쩌면 수백의 아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극장에 몰려들고 있었고 저는 제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입었지만 제 행색이 좀 초라하게 느껴졌죠. 극장은 제 '고용주'에 의해 완전히 대관된상태였고 그곳에는 오로지 제 '동료'들만이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의 공연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건 대체 얼마나 들어갈까? 대체 누가 이런 일에 큰 돈을 쓰는거지? 저는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하며 문을 향해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들어갔습니다.
모든 직원들은 세련된 검정 수트와 흰 셔츠,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변의 공기가 좀 무거워보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흰 색 웃는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어요. 활짝 웃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 합성수지는 마치 저를 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그들은 저희에게 모든 전자기기는 휴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심지어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체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는 저희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리를 뜨지말고 조용히 공연을 관람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화장실을 미리 다녀올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주문을 외웠습니다.
"방해하지마세요.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마세요. 집중력을 잃지마세요.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증인으로서 이곳에 있습니다."
만약 제가 혼자였다면 저는 곧바로 도망쳐 나왔을거에요. 제 뇌의 한 구석 어떤 원초적 감각이 찌릿거리며 지금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군중심리란 참 무섭습니다. 모두들 침착하게 그 어떤 저항도 없이 핸드폰을 건네주고 있었고 물론 몇몇은 거부감을 표시했지만(아마 저와 같은 신입들이)이내 그들도 순응했죠. 만약 모두가 지시를 따르고 있다면 저 또한 굳이 거스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체 누가 쉽게 얻을 수 있는 보상을 걷어차는 편집증환자가 되고싶겠어요?
3세기쯤 전에 지어진 웅장한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기괴한 형태의 무대였습니다. 마치 피아노의 뒷부분 같은 형태로 이상한 레버들과 손가락같이 생긴 마호가니 해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와이어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길이가 수백 미터는 족히 되어보였죠. 그 팽팽한 와이어들이 기괴한 형태로 무대 전체로 쭉 뻗은 모양은 어쩐지 거미줄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저로서는 그 복잡한 기계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공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셰잌스피어의 연극, 발레, 오페라, 거기다 심지어 인형극까지. 그 날의 공연은 35명 정도의 작은 실내 오케스트라 공연이었죠. 젊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학생들로 그들의 어딘지 불안한듯한 기색에서 저는 이게 아마 이렇게 많은 관중앞에서 하는 공연으로서는 처음일거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현악기섹션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목관악기가 한명씩, 호른과 타악기가 각각 둘씩 있었고 지휘자는 웃는 가면을 쓴 직원 중 한 사람이었어요. 전 당혹스러웠습니다. 대체 누가 이런 작고 미숙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위해 그런 큰 비용을 낸걸까요? 심지어 이런 크고 멋진 극장을 통째로 빌려서 말이에요. 저는 아마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명이 재벌 2세나 3세같은 것 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됐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깨달은 바로는 공연이 시작하는 때가 그나마 나은 순간입니다. 스스로에게 모든 것은 정상이고 괜찮은 상황이라며 다독이면서 마음을 비우고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이요. 공연자들이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모르는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입니다. 그러면 모두의 일이 아주 쉬워지거든요.
처음 공연을 관람한 날의 저는 그 공연자들만큼이나 무지했고 그저 음악을 즐기고 있었을 뿐 이었습니다. 어쩌면 젠체하는 오케스트라 전문가들은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저같은 막귀에게는 그저 괜찮게 들렸어요. 사실 꽤 즐기고 있을 정도였죠.
이내 곧 한가지 질문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작았던 궁금증은 점점 커져 제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어느 순간 저는 인터미션(쉬는시간)이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극장 안에는 창문이 없었고 전자기기도 모두 입구에서 제출했기때문에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흐른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가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금새 다른사람들에게서도 낌새가 일기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저와 같은 신입들은 눈썹을 움찔대거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흘끗흘끗 주변을 살피고 있었죠. 공연자들 역시 지치기 시작한듯 보였습니다. 무언가 자기들끼리 속삭이거나 손짓을 했고 몇몇은 마치 로봇처럼 흰 장갑을 낀 채 손을 멈추지 않는 지휘자를 향해 손짓했습니다. 체감상 두 시간은 족히 지난듯 느껴졌고 연주자들은 굉장히 지친 것 같아 보였어요. 심지어 몇명은 당장이라도 연주를 멈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공연을 계속 하세요."
그와 동시에 무대위의 기묘한 장치는 마치 살아있는 듯 모든 와이어를 팽팽하게 뻗으며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 모습은 화를 내는 것 같기도, 위협을 하는 것 같기도 했죠. 무대 자체에서 나오는듯한 커다란 천둥같은 소리는 쇠끼리 부딪히는듯한 소름끼치는 소리였어요. 그것은 한동안 모두를 겁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뒤로 30여분 정도 지났을 때,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느린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었던 탓에 우리 모두는 갑작스러운 피-잉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제 시선은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한 명에게 향했습니다. 바이올린 현 중 하나가 끊어지며 한 쪽 눈을 정확히 때렸고 붉은 줄이 생긴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피투성이였어요. 한 손으로 눈을 붙잡고 일어선 그녀는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순간 그 괴상한 장치는 마치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 처럼 딸깍대며 레버와 망치를 움직였습니다. 꼭 곰 덫이 작동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죠.
기계의 움직임은 정말로 갑작스럽고 가차없었어요. 마치 한 쌍의 기계팔처럼 움직이며 그녀를 고정하려는 듯 목 주위로 와이어를 둘렀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와이어들은 꼭 그녀가 거기에 없기라도 한 듯 그녀를 관통해 마구 움직였고 잠시동안 그녀는 아무렇지않은듯 보였습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말이에요.
그러고는 그녀가 분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에서 잘려나간 머리와 그녀의 눈을 누르고 있던 손, 도움을 요청하며 들었던 손의 손가락들. 그 모든 것은 단면이 아주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덜컹대며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그 순간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중력이 마침내 작용하기라도 한듯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어쩌면, 스스로의 죽음을 마침내 그 순간 깨달은걸지도요.
그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 공포에 질릴 수 조차 없었습니다. 공포라기보다는...어떤 미지적 경외심에 더 가까웠던 것 같네요. 모두가 한때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 연주자였던 고깃덩어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거미줄같은 와이어는 여전히 그들 주위를 돌며 삐걱대고있었고 기계음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려퍼졌습니다.
"공연을 계속 하세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경고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몇이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했지만 그들 모두는 몇 걸음도 채 가지못해 두 동강이 나버렸죠. 나머지는 여전히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는 단지 그들이 직면한 그 상황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려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 것에 가까웠어요. 그들의 정신이 차츰 돌아오자 그 본능이 그들의 생명을 구했음을 알았죠.
한 때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찼던 공연장은 음악을 저열하게 흉내낸듯한 불협화음의 소음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연주자들은 축축하고 떨리는 손으로 악기를 붙잡고 여전히 그들 주변을 윙윙대는 와이어의 분노를 사지 않기위해 간신히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그들은 차츰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러자 곧 한 때는 음악이었던 그 음울한 불협화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부짖기 시작했어요. 몇몇은 직원들에게 구걸하며 간청했고 몇몇은 법적이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겠다며 소릴 질러댔습니다. 그들의 그 모든 외침에도 가면을 쓴 이들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어요. 마치 동상처럼 그저 묵묵히 서있을 뿐 이었죠.
그러자 연주자들은 저희에게 관심을 돌렸습니다. 붉게 충혈된 눈은 동정을 바라며 저희를 바라보았고 함께 직원들에게 맞서달라 간청하며 저희를 자기들이 죽어가는걸 지켜만 보고있는 역겨운 개자식들이라 욕했습니다. 금발의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는 가장 잔인하면서도 천재적인 방식을 택했죠. 그저 그녀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훌쩍이며 우는 중간중간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어요.
"제 이-이름은 베라 헤-헤이스에요. 저기있는 사람은 제 남편 이-이구요."
그녀는 드럼을 치고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를 가르켰습니다.
"저-저희는 딸이 하나 있어요. 그 애는 여-여덟살이고, 엄마아빠를 아주 좋아해요. 그 애의 이름은 루-루시에요. 그-그녀는 말을 좋아해요. 저-저는 루시가 언젠가 승마수업을 듣게 해주려고 저축을 하고 있어요.."
저는 당장이라도 제 두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건 규칙에 어긋나는 일 이었죠. 왜 그녀는 저런 말을 하는걸까요? 저는 어금니가 갈렸습니다. 진심으로 그녀가 미웠어요. 태어나서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미워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희미하게 남은 제 이성의 잔해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이 곳의 희생자일뿐이야.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않았어. 저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제가 그녀를 미워하는 것은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저에게 상기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우리가 그녀를 지켜보고만있고 이는 공범과도 같다는 것을 상기시키기때문이었죠.
그녀의 전략은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구하기위해 자리에서 거의 일어날 뻔 했지만 그 순간 제 뒤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아마도 위쪽 자리에 서서 저희를 감시하던 직원들 중 하나가 총을 쏜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를 뻔 했지만 전 가까스로 제 눈을 앞에 고정한 채 자기자리에 스스로의 뇌를 흩뿌리게 된 피해자에 대해 생각할 뿐 이었어요. 핸드폰을 몰래 가지고 들어와서 911에 신고하려 했던걸까요? 공연을 중단시키려고 했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그저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어 공포로부터 눈을 돌려버리는 치명적인 결단을 내렸던 걸까요?
저는 피에 젖은 와이어의 불가해한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저 스스로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모든 기하학의 법칙을 위배하는 그 존재 자체가 불가능인 장치였죠. 제어되고 있는 그 어떤 조종장치도 찾을 수 없었고 그 대신 어떤 악의적인 지능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듯보였어요. 어쩌면 무대 자체를 포함한 어떤 생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구성장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틀림없이 살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자들의 아래에..공연자들이 흘린 피는 마치 흡수되기라도한듯 무대바닥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갔습니다.
몇시간 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던 오케스트라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의 입장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려웠죠.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으니까요. 그들 중 대부분이 벗겨진 피부에서 흘러나온 피로 악기를 적신 상태였고 프렌치호른을 연주하던 여자는 가장 위태로워 보였어요. 그녀의 폐와 손은 이미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못 하겠어."
그녀가 쉰 목소리로 외쳤고,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호른이 바닥에 떨어져 큰 소리를 냈습니다.
"정말 미안해, 더는 못 하겠-"
그 순간 빠르게 와이어가 살을 뚫고 지나갔고 그녀는 더이상 말할 수 있는 입도, 볼 수 있는 눈도, 생각할 것 조차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 한 잔의 쏟아진 와인처럼 모든 것이 무대 위에 흩뿌려졌을뿐.
또 다른 총성이 들렸고 저는 공포로 인해 이마가 푹 젖은 채 몸을 떨었습니다. 관객 중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버렸고 만약 이 갑작스러운 총성이 아니었다면 저도 같은 실수를 할 뻔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죠.
그 후 몇시간동안 대부분의 공연자에게 일어난 일은 대강 비슷했습니다. 실수를 하거나 그들의 몸이 먼저 지쳐버리는 식이었죠.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속으로 조용히 그들이 빨리 포기하기를 빌었어요. 그들은 무대에 오른 순간 죽은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대체 왜 몇시간 동안이나 질질 끌며 공연을 이어가는 걸까요? 저는 이제서야 인간이 자연의 본능을 무시한 채 죽음을 받아들이고 굴복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관객들 사이에서는 더이상 견디지 못한 방광과 장에서 쏟아져 나온 배변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고 제 옆의 망할 여자는 도저히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질 않았습니다..
베라와 그녀의 남편은 서로에게 의지한 덕분인지 가장 마지막으로 남았어요. 십여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아니 어쩌면 겨우 두어시간이었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완벽한 호흡으로 듀엣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서는 마치 평범한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 둘을 지켜보는 관객 모두가 없는 것 처럼 말이죠.
"자기야, 공연이 끝나고나면 마사이모의 포도밭에 가자. 내가 맨날 같이 가보자고 했었잖아..젠장 그 동안 왜 그렇게 오토바이 따위에 돈을 낭비했담."
"루시가 정말로 좋아하겠는걸."
베라는 킥킥대며 웃었어요.
"글쎄, 어린 꼬마아가씨한테는 좀 지루할지도 모르지..나이 든 사람들 밖에 없는 곳이잖아?"
베라의 남편은 힘없이 웃었습니다.
"마을은 좀 지루해 할지도 모르지만..알지? 루시가 얼마나 물에서 노는걸 좋아하는지. 한번 들어가서 수영을 시작하면 절대 나올 생각을 안하잖아. 어쩌면 나중에 올림픽스타가 될 지도 모르겠다니까? 하하.."
마치 두사람이 집에서 나누는 사적인 대화를 엿보는 듯한 그 광경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그저 평범함을 가장해 스스로의 정신을 붙들고 있으려 하는 것 뿐임을 알 수 있었어요. 그 둘의 웃음과 미소에서조차 떨림이 느껴졌고, 단 한번의 실수로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공포와 절망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들었던 몇가지 이야기들은 너무나 사적인 것 이어서 여기에 적을 수 없는것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동안 있던 오래된 후회와 지나간 실수 그리고 싸움들에 대한 것들. 마치 종말이 오기 전 하고싶은 모든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보였어요. 저는 적어도 그들의 프라이버시만큼은 지키고자합니다.
하지만 베라의 남편은 서서히 집중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는 너무 빠르게 움직였고 심벌즈를 손으로 잡으려다 손바닥에 큰 상처를 남기며 피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죠. 그는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듯 보였고 현기증때문에 몸이 흔들리는것과 동시에 그의 말투가 점점 불분명해지면서 연주가 엉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라는 필사적으로 남편의 집중력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들어봐 자기야. 해변에 가게되면, 루시가 조개들을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돼? 자기맘에 드는 것들을 주워서 스탠드에 세워두겠지. 트로피들 사이에 말야."
베라는 계속해서 중얼거렸지만 이제 그녀의 남편이 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반쯤 긍정하는듯한 불분명한 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어요. 그가 의자에 반쯤기대앉은채로 손을 든 순간 드럼스틱이 그의 손에서 날아가며 분홍빛의 피구름궤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와중에도 무의식중에 연주동작을 계속했죠.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에 빛이 돌아왔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듯한 모습으로 자기 빈 손을 내려다 봤습니다. 그러자 피아노 와이어가 팽팽히 당겨진채 그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그 순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희를 향해 달려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는 끝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가 하려던 것은 최후의 저항이었죠. 그는 심지어 저와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표정을 저는 영영 잊을 수 없을거에요..
"대체 뭘 보고있는거야 이 개자식들아! 이 역겨운, 망할-"
그는 그의 손에 남은 드럼스틱을 집어던졌고 그 궤적은 틀림없이 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백가닥은 되어보이는 와이어가 허공에 제각기 휘날리며 스틱이 먼지가 되어 사라질때까지 갈아내버렸고 동시에 그 역시도 마찬가지로 피먼지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베라는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치 병원에서 피할 수 없는 아픈 주사를 맞기전 긴장한 듯한 작은 한숨을 내쉬었을 뿐. 완전히 홀로 남은 그녀는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 저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표현하고, 말하고싶은듯 보였지만..무슨 할 말이 더 남아있었을까요? 그녀는 이미 목이 쉬어버릴때까지 하루종일 생각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단어의 조합으로 소리를 질러댔는걸요.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죠. 모든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말 대신 그녀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태어나서 들은 것 중 가장 침착하면서도 슬픈 음악이었습니다. 그녀가 즉흥적으로 연주한 그 음악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부분을 전달하고 있었어요. 베라는 붉게 충혈되고 핏발 선 눈으로 저희 하나하나와 눈을 맞춰왔습니다. 마치 저희에게 자신들은 형체없는 덩어리따위가 아니고 이 모든 일에 우리들에게 또한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려는듯. 지금은 마치 꿈결에서 들은 멜로디처럼 희미하지만 여전히 그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베라의 연주는 마치 영원같이 느껴졌어요. 그리고는 막바지에 이른 그녀는 천천히 바이올린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베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의 모두가 갑자기 기립박수를 쳤고 저 또한 즉시 일어서 끝없는 기립박수의 행렬에 동참했어요. 우리는 비명과 소릴 지르고 울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의자를 마구 때리거나 머리를 쥐어뜯고 웃으며 춤을 춰댔습니다. 하루종일 꾹 참고있던 침묵끝에 느낀 것은 엄청난 카타르시스였어요. 그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과 강렬한 정서적 유대와 연결을 느껴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모두는 지쳐버린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을 한 구울무리처럼 극장을 나섰습니다. 직원들은 전에없이 공손한 태도로 저희가 공연에 참석해준것에 감사를 표하며 저희가 '공연을 즐겼기를' 바란다 말했습니다. 몇몇은 총에 맞은 관객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죠. 제가 마침내 밖으로 나섰을때 아직도 같은 날의 저녁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극장안에서최소 20시간은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밖으로 나왔을때는 겨우 2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들이 말했던 정확한 근무시간말입니다.
계약서에 제가 보고 들은것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없었는데 왜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제 말을 믿지않으니까요.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이 이 모든것을 은폐하고 있을수도 있겠죠. 신께 맹세코 정말 경찰이 제 신고를 듣고는 수화기너머로 절 비웃더라니까요.
저는 다시는 돌아가지않겠노라 맹세했었습니다. 저는 어떤 알 수 없고 불가사의하며 사악한 것의 목격자였고 그 사실은 평생 저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게 분명했죠. 하지만 그 다음 한 해의 부채는 끊임없이 늘어만 갔고 그와 반비례해서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절박한 해였어요..1년을 어렵게 버텼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결국 저는 버티기를 포기했고 제 두려움과 함께 한 그 다음 공연은...쉬웠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있었으니까요. 그 다음은 더 쉬웠고, 그 다음은 뭐..
공연의 종류와 내용은 항상 달라집니다. 그저 결과만이 똑같을 뿐.
저는 항상 그곳에서 그들이 행하는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 노력합니다. 제가 하는거라고는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이니까요. 우리는 매일 뉴스나 인터넷에서 다른사람들의 죽음을 접합니다. 같은 나라의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불운한 운명을 맞고있다는 불편하고 불안한 사실들 말이에요. 이게 제 일과 다른점이 대체 뭘까요?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단 것을 받아들여야하고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것이라고는 눈을 돌려 외면해버리거나 공포를 똑바로 마주하는 것 뿐입니다. 외면하는게 과연 더 도덕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더 비겁한 선택일뿐일까요?
게다가 관객이 없다는건 그들에게 더 불행한 일이 아닐까요? 어둠속에서 지켜보는 이도 하나 없이 홀로 죽어가야한다면? 아무도 지켜보지않는채로. 아무도 신경쓰지않고 누구도 기억해주지않는채로요.
결국...
누군가는 증인이 되어주어야만합니다.
'공포번역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딧공포번역글]내가 아내에게 한 거짓말. (2) | 2024.11.27 |
---|---|
[레딧공포번역글]다섯명이 함께 온 캠핑의 여섯번째 사람. (0) | 2024.01.26 |
[레딧공포번역글]남극에 수쉐프일자리를 얻은 동생이 한달째 연락이 되지않는다. (2) | 2023.10.08 |
[레딧공포번역글]죽은 아내와의 대화. (1) | 2023.10.07 |
[레딧공포번역글]내가 이혼당할만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새벽 3시에 이런 일을 겪게 할 것까지는 없었다고. (0) | 2023.08.28 |
댓글